아주 아주 먼 옛날, 세상은 지금과 전혀 다른 모습이었어요. 그때는 하늘과 땅이 나누어지지 않았고, 멀리서 떠오르는 태양도, 밤하늘을 비추는 달님도 없었답니다.
높고 푸른 하늘도, 두텁고 넓은 땅도 없었지요. 가벼운 것과 무거운 것, 맑은 것과 탁한 것이 모두 한데 섞여 마치 둥근 달걀 같은 모습이었어요. 위쪽이 어디인지, 아래쪽이 어디인지 알 수 없는 커다란 혼돈의 덩어리였답니다.
반고는 바로 그 속에서 태어났어요.
그의 주변에는 산도 없고 강도 없었으며, 멀리서 떠오르는 태양조차 없었지요. 모든 것이 빽빽하게 뭉쳐 있어서 어디를 하늘이라 부를 수도, 어디를 땅이라 부를 수도 없었어요. 반고는 그렇게 아직 나누어지지 않은 하늘과 땅 사이에 있었답니다.
하늘과 땅이 서서히 갈라지다
그렇게 아주 오랜 시간이 흘렀어요.
만 팔천 년이 지났을 때, 한데 섞여 있던 하늘과 땅에 드디어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어요. 맑고 가벼운 부분은 위로 솟아오르고, 탁하고 무거운 부분은 아래로 가라앉았지요. 서로 엉켜 있던 두 부분이 조금씩 거리를 두기 시작한 거예요.
위로 올라가는 것은 점점 더 높이 올라갔고, 아래로 가라앉는 것은 점점 더 두터워졌어요. 맑은 부분이 탁한 부분에서 벗어나 더 이상 서로 엉겨 붙어 있지 않게 되었지요. 그렇게 하늘과 땅이 천천히 갈라졌고, 반고는 여전히 그 사이에 있었답니다.
위쪽은 하늘이 되었고, 아래쪽은 땅이 되었어요.
하나의 덩어리였던 곳에 넓고 탁 트인 공간이 펼쳐졌어요. 반고는 하늘과 땅 사이에 우뚝 섰고, 발밑의 땅은 점점 두터워졌으며 머리 위의 하늘은 점점 더 높이 뻗어 나갔어요. 반고 역시 하늘과 땅을 따라 하루하루 키가 커졌답니다.
하루, 또 하루
하늘은 매일 한 장(丈)씩 높아졌고, 땅은 매일 한 장씩 두터워졌으며, 반고 또한 매일 한 장씩 키가 자라났어요. 여기서 장은 중국의 옛 길이 단위예요.
하루가 지나면 하늘은 한 장(丈)만큼 높아졌고, 땅은 한 장만큼 두터워졌어요. 그 사이에 있던 반고 역시 한 장만큼 키가 자랐지요. 또 하루가 지나면 머리 위의 하늘은 계속해서 위로 올라갔고, 발아래의 땅은 계속해서 두꺼워졌어요. 반고의 모습도 이 공간을 따라 함께 커졌답니다.
처음에는 눈앞의 모든 것이 한데 섞여 있었지만, 이제는 위아래가 분명하게 나뉘었어요. 위를 올려다보면 하늘은 점점 더 멀어졌고, 아래를 내려다보면 땅은 점점 더 깊어졌지요. 반고는 그 중간에서 계속 성장하며 몸집이 점점 더 거대해졌고, 하늘과 땅 사이의 거리도 점점 더 넓어졌어요.
발밑에는 땅이, 머리 위에는 하늘이, 그리고 곁에는 막 펼쳐지기 시작한 천지가 있었어요. 처음에는 맑은 기운과 탁한 기운이 가까이서 서로 맞닿아 있었지만, 이제는 위쪽의 맑은 기운과 아래쪽의 두터운 기운이 완전히 분리되었고 반고의 모습은 그 사이에서 활짝 펴졌어요. 하늘이 올라가니 반고도 함께 올라갔고, 땅이 두터워지니 반고의 키도 함께 자라났답니다.
하루, 또 하루가 흘렀어요.
하늘은 처음의 높이에 머물지 않았고, 땅 또한 처음의 두께에 머물지 않았어요. 반고의 모습은 그 변화를 따라 함께 바뀌었지요. 처음 갈라졌을 때의 그 좁았던 공간은 이제 아주 멀리 펼쳐져서, 더 이상 처음의 그 섞여 있던 달걀 같은 모습이 아니게 되었어요.
한 장, 또 한 장. 하루 이틀, 일 년 이 년이 아니라, 이런 성장은 무려 1만 8천 년 동안이나 계속되었답니다.
마침내 하늘은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높아졌고, 땅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깊고 두터워졌어요. 반고는 하늘과 땅 사이에 서서 세상 어디에도 없는 거대한 거인이 되었지요.
바람과 구름, 해와 달이 세상에 찾아오다
하지만 이 넓은 천지는 아직 우리가 알고 있는 익숙한 모습이 아니었어요. 구름을 밀어줄 바람도 없었고, 대지를 따라 흐르는 강물도 없었으며, 산과 들판에 가지를 뻗은 풀과 나무도 없었지요. 하늘과 땅은 갈라졌지만, 많은 것들이 아직 세상에 나타나지 않은 상태였어요.
그러던 어느 날, 마침내 반고의 생명이 다하게 되었어요.
반고의 거대한 몸이 쓰러지자, 천지 사이에는 신비로운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어요.
그의 숨결은 바람과 구름이 되었답니다.
바람이 거인이 서 있던 자리에서부터 불어와 텅 빈 천지를 가로질러 퍼져 나갔어요. 하늘은 이제 그저 고요하고 아득한 공간만이 아니었지요. 구름이 그 위로 모여들었다가 다시 넓게 펼쳐지기도 했어요. 어떤 구름은 얇은 베일처럼 가벼웠고, 어떤 구름은 겹겹이 두껍게 쌓여 바람을 타고 멀리멀리 흘러갔답니다.
구름 한 조각이 가까운 곳에서 먼 곳으로 흘러가면, 또 다른 구름이 하늘에 넓게 펼쳐졌어요. 예전에 반고가 내쉬던 숨결은 이제 광활한 천지 사이에 흩어져 그 끝을 알 수 없게 되었지만, 구름이 그 숨결을 따라 움직이는 모습은 분명히 볼 수 있었지요.
그의 목소리는 천둥소리가 되었어요.
묵직한 천둥소리가 하늘을 가로질러 울려 퍼졌고, 텅 빈 공간을 타고 아주 멀리까지 전해졌어요. 고요하기만 했던 천지에 웅장한 메아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한 거예요. 소리는 구름층을 넘어 멀리 흩어지며, 마치 거인의 목소리가 여전히 세상 속에 울리고 있는 것만 같았답니다.
그의 왼쪽 눈은 태양이 되었고, 오른쪽 눈은 달이 되었어요.
태양은 대지 위로 환한 빛을 뿌려주었어요. 어둠에 잠겨 있던 곳들이 조금씩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지요. 높은 곳이 밝아지더니 낮은 곳까지 빛이 닿았어요. 이제 하늘에는 흐르는 구름뿐만 아니라, 눈부신 태양이 떠올라 변화하는 세상을 비추고 있었답니다.
달이 하늘에 떠오르면 빛은 다시 부드러워졌어요. 맑고 은은한 달빛이 대지 위로, 그리고 먼 곳까지 내려앉았지요. 그렇게 태양과 달은 하늘의 두 가지 빛이 되었어요. 하나는 밝고 따뜻한 빛이었고, 다른 하나는 고요하고 부드러운 빛이었답니다.
대지에 산과 강, 풀과 나무가 생겨났어요
반고의 팔다리와 몸은 사방으로 높게 솟은 산맥이 되었어요.
평평했던 대지 위로 산봉우리가 솟아오르고 산줄기가 서로 이어졌어요. 가까운 곳에 산 하나가 있으면 먼 곳에 또 다른 산이 있어, 서로 물결치듯 굽이치며 보이지 않는 곳까지 뻗어 나갔지요. 산봉우리 사이에는 깊은 골짜기가 생겨났고, 바람이 불 때면 이 높고 낮은 곳들을 지나며 시원하게 불어왔답니다.
그의 치아와 뼈는 금속과 돌이 되었어요.
산봉우리에는 단단한 바위가 생겨났고, 암벽이 층층이 펼쳐지며 돌덩이들이 들판 곳곳에 드러났어요. 어떤 큰 바위는 높은 곳에 우뚝 솟아 있고, 어떤 바위는 산기슭에 놓여 멀리서 보아도 색깔이 제각각이었지요. 거인의 몸속에 있던 단단한 부분들이 이제는 다른 모습이 되어 이 대지 위에 남게 된 것이랍니다.
그의 피는 강과 하천이 되었어요.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흘러 산기슭을 돌아 다니고 골짜기를 가로질러 갔어요. 가느다란 물줄기들이 하나둘 모여 점차 넓은 강이 되었지요. 강물은 하늘의 빛을 머금은 채 굽이굽이 흘러 더 먼 곳을 향해 달려갔답니다.
강과 하천은 더 이상 거인의 몸속에 머물지 않고 대지 위에 넓게 펼쳐졌어요. 양옆으로는 산이 우뚝 솟아 있고, 그 사이로 물이 흘러갔지요. 물결 위로 구름 그림자가 내려앉아 살랑살랑 흔들렸어요. 텅 비어 있던 천지에 이제는 높은 산과 흐르는 물이 생겨난 것이에요.
그의 근육은 흙이 되어 땅이 되었고, 피부와 털은 풀과 나무가 되었어요.
산 사이와 강가로 흙이 넓게 깔렸어요. 땅 위로는 가느다란 풀잎들이 돋아나고 나무들이 가지를 뻗었지요. 아무런 색이 없던 곳에 어느덧 짙고 옅은 초록빛이 물들기 시작했어요. 낮은 곳에는 풀들이 융단처럼 깔리고 높은 곳에는 나무들이 무성한 가지를 펼치니, 대지는 더 이상 황량한 모습이 아니었답니다.
바람이 불어오면 풀잎들이 한쪽으로 눕고, 바람이 멀어지면 다시 살며시 고개를 들었어요. 나뭇가지도 바람을 따라 흔들리며 잎사귀들이 서로 부딪혔고, 산과 들에는 어느새 부드러운 소리가 가득 찼어요.
그의 땀방울은 비와 이슬이 되었어요.
비가 내려 잎사귀를 적시고 땅속으로 스며들었어요. 풀잎 끝에 맺힌 작은 물방울은 반짝이는 빛을 내뿜었고, 더 많은 빗물은 낮은 곳으로 모여 강과 하천으로 흘러갔지요. 그렇게 하늘과 산, 그리고 흐르는 물이 하나로 이어졌답니다.
그의 정수는 진주와 옥이 되었어요.
은은하고 부드러운 광채가 천지 사이에 숨어들었어요. 빛이 닿으면 작고 밝게 반짝였고, 주변이 어두워지면 다시 조용히 그 자리를 지켰지요. 대지에는 두터운 흙과 단단한 바위, 그리고 이렇게 부드러운 빛을 내는 구슬과 옥이 생겨났어요.
그의 수염과 머리카락은 별이 되었어요.
태양 빛이 사라지면 멀고 가까운 별들이 하늘에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어요. 달 곁에도 별이 뜨고, 구름 사이사이에도 별이 반짝였지요. 반고의 모습은 이제 천지 어디에도 없지만, 고개를 들면 하늘 가득히 빛나는 별들을 볼 수 있게 되었답니다.
비가 그치고, 풀잎 끝에는 작은 물방울들이 여전히 맺혀 있어요. 구름 사이로 쏟아진 햇살이 잎사귀를 비추고, 멀리 보이는 산봉우리까지 환하게 밝혀주네요. 물방울 하나가 반짝이며 풀잎을 타고 땅속으로 스며들고, 더 많은 물줄기는 강과 하천으로 모여 계속해서 앞으로 흘러가요.
낮에는 구름 그림자가 산 사이를 천천히 지나가고, 나뭇잎들은 햇살 아래서 살랑살랑 흔들려요. 밤이 되면 달빛이 수면 위에 내려앉고, 밤하늘의 수많은 별도 함께 모습을 드러내지요. 같은 강물이라도 낮에는 태양 빛을 머금고, 밤에는 달 그림자를 품은 채 산자락에서 먼 곳으로 흘러간답니다.
처음에 반고는 위아래를 구분할 수 없는 혼돈의 덩어리 속에서 태어났어요. 하지만 이제는 하늘이 높게 펼쳐져 있고, 땅이 두텁게 아래에 깔려 있지요. 하늘에는 해와 달, 별들이 떴고, 땅에는 높은 산과 깊은 강이 생겨났어요. 산비탈에는 풀이 돋아나고 나무들이 가지와 잎을 펼치자, 그 사이로 촉촉한 비와 이슬이 내린답니다.
이제 하늘과 땅 어디에서도 반고의 거대한 모습은 찾을 수 없어요. 하지만 바람 속에는 그의 숨결이 있고, 천둥소리 속에는 그의 목소리가 담겨 있지요. 고개를 들면 그가 변해서 된 해와 달이 보이고, 고개를 숙이면 그가 변해서 된 산과 강, 풀과 나무가 보여요.
바람이 다시 산 사이로 불어오자 나뭇잎들이 사각사각 소리를 내고, 강물은 달빛을 받으며 굽이굽이 흘러가요. 혼돈 속에서 하루하루 키가 자랐던 그 거인은, 이제 이 넓고 광활한 천지가 되어 우리 곁에 머물고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