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는 언제 있었을까요?
아래로 걸어 가요. 한쪽엔 왕조, 반대쪽엔 이야기 — 다음 역에서는 방향이 바뀌어요. 선이 닿는 곳까지 읽어 보세요.
신화와 전설
연도보다 오래됨
이 이야기들은 연도보다 오래되었어요. 시간의 강 첫 번째 역이에요.
이야기 0개이 시대의 이야기는 아직 준비 중이에요. 다른 왕조도 살펴 보세요.
선사 시대
연도 미상
문자가 생기기 전에 사람들은 입에서 입으로 대를 이어 과거를 기억했습니다. 반고가 하늘과 땅을 열고, 여와가 사람을 빚고, 신농이 백초를 맛보고, 황제가 치우와 싸웠습니다. 먼 옛날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이렇게 이야기 속에서 살아 있었습니다.
땅 속에는 더 오래된 '증거'도 잠들어 있습니다. 돌도끼와 채색 토기, 반파 사람들의 마을, 허무두의 벼 이삭입니다. 말은 못 하지만 선조들이 어떻게 밭을 가꾸고 집을 짓고 함께 살았는지 들려줍니다.
전설은 사실과 같지 않습니다. 그러나 전설에는 선조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남아 있습니다. 이야기와 유물을 나란히 읽으면 선사 시대가 살아 움직입니다.
이야기 1개하
BC 2070년 — BC 1600년
전설에 따르면 대우가 홍수를 다스린 뒤 왕위는 아들 계에게 넘어갔고, 권력은 한 가문 안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하(夏)는 중국 최초의 왕조로 전해집니다.
하나라 이야기의 대부분은 훗날의 기록에서 나옵니다. 우가 집 앞을 세 번 지나치면서도 들르지 않았다는 이야기, 소강의 부흥, 마지막 왕 걸의 멸망입니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족보 같아서 자세는 흔들려도 줄거리는 대를 이어 왔습니다.
허난성 얼리터우에서는 전설 속 하와 시기가 거의 겹치는 대규모 궁전 터와 청동기가 발굴되었습니다. 이곳이 하의 도읍인지는 학자들 사이에서 아직 논쟁 중입니다. 하의 역사는 절반은 책 속에, 나머지 절반은 아직 땅 속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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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
BC 1600년 — BC 1046년
상나라는 자기 문자를 직접 남긴 중국 최초의 왕조입니다. 왕은 큰일을 앞두면 점을 쳤습니다. 궁금한 일을 거북 등껍질이나 짐승 뼈에 새기고, 불로 금을 내게 한 뒤 그 갈라진 자국에서 신의 대답을 읽었습니다.
그 새겨진 문자가 바로 **갑골문자**, 오늘날 한자의 조상입니다. 문자 덕분에 상나라의 역사는 더 이상 전설이 아닙니다. 반경의 은천도, 왕 무정과 여장 부호의 나란한 싸움, 주왕의 나라 잃음 — 모두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은허에서 나온 후모무 대정은 무게가 800킬로그램이 넘고, 그 청동 솜씨는 오늘의 장인도 감탄하게 합니다. 책 속의 상나라와 땅 속의 상나라가 여기서 마주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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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주
BC 1046년 — BC 771년
주나라 무왕은 상나라 주왕을 토벌하고 새 왕조를 세워 도읍을 호경에 정했습니다. 이것이 서주입니다. 왕은 땅을 친족과 공신에게 나누어 주어 여러 겹으로 쌓인 봉건 질서를 만들었습니다. "천하의 땅은 모두 왕의 땅"입니다.
주공은 예악을 정해 제사·연회·옷차림의 법도를 정했고, 귀족 자제들은 학교에서 배웠습니다. 중국 사람이 예를 소중히 여기는 전통이 이 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후기에 이르러 여왕은 백성의 입을 막았고, 유왕은 웃음 한 번 얻으려 봉화를 올려 제후를 놀렸습니다. 위기는 한 걸음씩 다가왔습니다. 기원전 771년 견융이 호경을 함락시키자 서주는 막을 내렸고, 왕은 동쪽으로 옮겨 춘추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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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주 열국·춘추
BC 770년 — BC 476년
주나라 왕이 동쪽 낙읍으로 옮긴 뒤 왕실의 힘은 점점 약해지고 제후국은 점점 강해졌습니다. 큰 나라들은 '왕을 받들고 오랑캐를 물리친다'는 기치를 내걸고 패자 자리를 다투었습니다. 이것이 춘추 시대입니다.
제 환공은 관중을 중용했고, 진 문공은 19년 망명 끝에 돌아와 패자가 되었으며, 월왕 구천은 섶 위에서 잠들고 쓸개를 맛보며 견뎠습니다. 고사성어에서 가장 흥겨운 대목이 대부분 이 시대에서 나왔습니다.
공자가 제자들과 함께 여러 나라를 돌고 노자가 오천언을 남긴 것도 이때입니다. 패권 다툼의 소란 바깥에서 중국 사상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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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주 열국·전국
BC 475년 — BC 221년
춘추 시대 100여 개 나라가 싸운 끝에 남은 것은 제·초·연·한·조·위·진 일곱 강국, 이른바 전국 칠웅입니다. 전쟁은 패자 다툼에서 땅 삼키기로 바뀌었고 그 규모는 점점 커졌습니다.
각 나라는 개혁으로 부국강병을 다했습니다. 위나라에 이귀, 진나라에 상앙이 있었습니다. 소진과 장의는 외교로 종횡했고, 염파와 인상여는 장군과 재상의 화합을 보여 주었으며, 전단은 화우진으로 연나라를 깼습니다. 꾀와 용기가 번갈아 무대에 올랐습니다.
백가쟁명도 이때 정점에 이르렀습니다. 맹자는 인정을 말하고 장자는 자유롭게 노닐었으며 순자는 가르치고 한비는 법가를 집대성했습니다. 마지막에 천하를 통일한 것은 서쪽의 진나라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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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BC 221년 — BC 207년
기원전 221년, 진나라 왕 정은 여섯 나라를 모두 무너뜨리고 스스로 '시황제'라 일컬었습니다. 중국 최초의 중앙집권 통일 왕조가 태어난 순간입니다.
문자를 통일하고 수레 바퀴 간격을 통일했으며 도량형과 화폐를 통일했습니다. 역도를 닦고 장성을 이었으며 봉건 대신 군현을 두었습니다. 진시황은 '통일'이라는 두 글자를 이후 2천 년 중국에 새겨 넣었습니다.
그러나 가혹한 형벌과 무거운 부역은 곧 저항의 불을 붙였습니다. 진승과 오광은 대택향에서 봉기했고 항우와 유방이 이어 관중으로 들어왔습니다. 한때 강대했던 진은 불과 15년 만에 끝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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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한 전쟁
BC 207년 — BC 202년
진나라가 무너진 뒤 천하의 새 주인은 누가 될까요? 항우와 유방이 두 가지 답을 내놓았습니다. 한 사람은 귀족 출신의 '패왕', 다른 한 사람은 정장 출신의 '한왕'입니다.
홍문연의 칼빛, 겉으로는 착도를 고치며 몰래 진창으로 들어간 일, 한신의 십면매복, 사방에서 들려온 초나라 노래 — 짧은 4년 동안 모든 대결이 성어와 이야기의 보고가 되었습니다.
기원전 202년 항우는 오강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고 유방은 한나라를 세웠습니다. 이 성쇠의 이야기는 후대 사람들에게 2천 년 넘게 전해져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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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
BC 202년 — AD 8년
유방이 세운 한나라는 도읍을 장안에 두었습니다. 문제·경제의 치세로 국력을 회복하고, 무제 때에 이르러 한은 당시 세계에서 가장 강한 나라 가운데 하나가 되었습니다.
장건은 서역으로 떠나 비단길의 첫걸음을 내디뎠고, 위청과 곽거병은 흉노를 북쪽으로 몰아냈으며, 사마천은 치욕을 참고 '사기'를 완성했습니다. '백가를 물리치고 유술만을 높이다'도 이 임금 대의 일입니다.
왕조 말기 외척 왕망이 황제 자리를 빼앗아 서기 8년 서한은 끝났습니다. 그러나 '한'이라는 글자는 이후 이 민족을 가리키는 가장 중요한 이름 가운데 하나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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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한
AD 25년 — AD 220년
유수는 한나라 종실의 후손으로, 어지러운 세상에서 한나라를 다시 세워 도읍을 낙양에 정했습니다. 이것이 동한입니다. 광무중흥으로 나라는 다시 안정되었고 채륜은 종이 만드는 법을 개량했습니다.
반초는 붓을 던지고 서역을 경영했고, 장형은 지동의를 만들었으며, 화타는 병자를 고치고 장중경은 '상한잡병론'을 썼습니다. 과학·의학·사학이 이 시대에 크게 빛났습니다.
동한 후기에는 외척과 환관이 번갈아 조정을 잡았고 황건의 난이 기반을 흔들었습니다. 탁교가 수도로 들어온 뒤 영웅들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역사는 삼국으로 넘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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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 시대
AD 220년 — AD 280년
동한 말 나라가 부서진 뒤 위·촉·오 삼국이 나란히 서서 균형을 이루었습니다. 조조는 황제를 끼고 제후에게 명령했고, 유비는 삼고초려로 제갈량을 청했으며, 손권은 동남을 지켰습니다. 관도·적벽·이릉 세 큰 전투가 다리 세 개의 지도를 그렸습니다.
영웅과 지략의 시대입니다. 관우의 천리 단기, 조운의 장판파 구출, 제갈량의 '죽어서야 그치리라'—— 그리고 삼조와 건안 풍골은 오늘도 읽힙니다.
삼국이 이토록 유명해진 것은 소설 '삼국지연의' 덕분입니다. 일곱은 사실, 셋은 허구입니다. 읽을 때 정사 '삼국지'와 비교해 보면 더욱 재미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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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
AD 265년 — AD 316년
사마염은 위를 대신해 제위에 올라 진을 세웠습니다. 280년 오를 멸망시켜 삼국은 하나로 합쳐졌습니다. 태강 연간 천하는 잠시 평화로웠습니다.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황제가 종실 제왕에게 땅을 나누어 준 것이 팔왕의 난을 불렀고 변경의 여러 민족이 틈을 타고 들어왔습니다. 311년 낙양이, 316년 장안이 차례로 함락되며 서진은 망했습니다.
죽림칠현의 이야기는 위진 교체기의 것입니다. 그들의 소탈함과 우울함은 그 시대의 또 다른 얼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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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진
AD 317년 — AD 420년
서진이 멸망하자 사마예는 강남에서 진을 다시 세워 도읍을 건강에 두었습니다. 이것이 동진입니다. 북방의 사족들이 '의관을 갖추고 남쪽으로 건너' 강남은 점점 융성해졌습니다.
'왕씨와 사마씨가 천하를 함께 다스린다'는 문벌 정치, 조적의 문계기무, 비수 대전의 소수 승리, 왕희지의 '난정집서', 도연명의 귀전 — 강남에 웅크린 왕조였지만 문화와 예술은 활기 넘쳤습니다.
420년 무장 유유가 진을 대신해 송을 세우면서 역사는 남북조로 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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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육국
AD 304년 — AD 439년
서진 말에 흉노·갈·선비·저·강 등 여러 민족이 북방과 파촉에서 잇달아 정권을 세웠습니다. 모두 스무 개가 넘었고 그중 열여섯이 사서에서 '십육국'으로 함께 불립니다.
정권이 회전등처럼 바뀌는 격동의 세월이었고 백성들은 대거 떠돌았습니다. 동시에 여러 민족이 섞여 살고 혼인하며 호상과 호식이 중원에 들어오고 한 문화가 각 민족에게 퍼진 융합의 세월이기도 했습니다.
439년 북위가 북방을 통일하자 십육국은 막을 내리고 남북조가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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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조
AD 420년 — AD 589년
420년부터 589년까지 중국의 남쪽과 북쪽에서는 왕조가 잇달아 바뀌었습니다. 남쪽에는 송·제·양·진이, 북쪽에서는 북위가 동위와 서위로 나뉘고 다시 북제와 북주가 이어졌습니다. 이것이 남북조 시대입니다.
북위 효문제는 도읍을 낙양으로 옮기고 한족 성씨를 쓰며 중국어를 말하게 하여 여러 민족의 융합을 밀어붙였습니다. 윈강과 룽먼 석굴의 대불도 이때 뚫리기 시작했습니다. 남쪽에서는 조충지가 원주율을 계산하고 가사협이 '제민요술'을 썼습니다.
어지러운 세상 속에서 불교는 흥성하여 '남조 사백팔십사'라는 시구가 절의 많음을 말해 줍니다. 589년 수나라 군사가 강을 건너 진을 멸망시키고 중국은 다시 하나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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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AD 581년 — AD 618년
북주의 외척 양견은 주를 대신해 수를 세우고, 8년 뒤 강을 건너 진을 멸망시켜 300년 가까운 분열을 끝냈습니다. 수는 진나라처럼 짧았지만, 진나라처럼 뒤에 남은 영향이 컸습니다.
수양제는 대운하를 파서 남북을 하나로 이었고, 조정은 과거제를 열어 시험으로 벼슬길을 열었습니다. 두 제도 모두 천 년 넘게 이어집니다.
그러나 해마다 이어진 공사와 원정이 국력을 다 쓰고 농민 봉기가 사방에서 일어났습니다. 618년 수가 망하고 뒤따른 당나라가 수의 제도를 정점으로 끌어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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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
AD 618년 — AD 907년
당나라는 고대 중국에서 가장 개방적이고 가장 번영한 왕조 가운데 하나입니다. 태종 이세민의 정관지치부터 유일한 여황제 측천무후, 그리고 현종의 개원성세까지, 수도 장안은 당시 세계 최대의 도시였습니다.
현장은 인도로 경전을 구하러 떠났고 문성공주는 토번으로 시집갔으며 감진은 일본으로 건너갔습니다. 이백·두보·백거이의 시는 오늘도 읽히고, 당삼채와 둔황 벽화는 그 시대의 빛깔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안사의 난을 계기로 쇠락하기 시작해 이후 번진이 할거하고 환관이 권력을 잡았습니다. 907년 주온이 당을 찬탈하면서 시의 황금 시대는 막을 내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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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십국
AD 907년 — AD 960년
당이 멸망한 뒤 반세기 동안 중원에서는 후량·후당·후진·후한·후주 다섯 왕조가 차례로 바뀌었고 주변에는 열 남짓한 작은 나라가 함께 있었습니다. 합쳐서 오대십국이라 부릅니다.
정권이 회전등처럼 바뀌었지만 빛나는 면도 있었습니다. 후주의 세종 채영은 개혁으로 통일을 준비했고, 사(詞)라는 새 문체가 남쪽 나라들에서 피어났으며, 목판 인쇄가 이 시기에 널리 퍼졌습니다.
960년 후주 장수 조광윤은 진교역에서 병사들에게 황포를 걸치고 송나라를 세웠습니다. 어지러운 세상은 점점 하나로 되돌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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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요·서하·금
AD 960년 — AD 1279년
송나라는 북송과 남송으로 나뉘어 먼저 요·서하와, 다음으로 금과 나란히 서다가 끝내 몽골에게 망했습니다. 군사적으로는 늘 열세였지만 경제와 문화는 고대 중국의 정점이었습니다.
필승은 활자 인쇄를 발명했고 나침반은 바다로 나갔으며 화약은 무기가 되었습니다. '청명상하도'는 변경의 번화를 그렸고 소식·이청조·신기질의 사(詞)와 악비·문천상의 절개가 모두 이 왕조에 속합니다.
전연의 맹약, 정강의 변, 악비의 항금, 애산의 마지막 — 화친과 전쟁의 선택이 시대 전체를 관통하며 가슴을 울리는 이야기를 무수히 남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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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원
AD 1206년 — AD 1368년
1206년 테무진은 초원의 부족들을 통일하고 '칭기즈 칸'의 존호를 받아 몽골 제국을 세웠습니다. 몽골 기마군은 유라시아를 휩쓸었고 1271년 쿠빌라이는 국호를 대원으로 정했으며 8년 뒤 남송을 멸망시켜 중국을 통일했습니다.
원나라 영토는 전례 없이 넓었습니다. 역로가 사방으로 뻗고 사람과 물자가 자유로이 오갔으며 마르코 폴로가 적은 대도는 유럽 사람들을 매료시켰습니다. 원곡과 잡극이 일어나 관한경의 '두아원'은 인간 세상의 슬픔과 기쁨을 무대에 올렸습니다.
민족 간 신분 구분과 무거운 세금은 봉기를 거듭하게 했습니다. 1368년 주원장의 군대가 대도로 들어오고 원 순제는 북쪽 초원으로 떠나며 명나라가 세워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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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
AD 1368년 — AD 1644년
주원장은 소를 지키던 아이와 젊은 승려에서 건국 황제가 되었습니다. 명나라는 먼저 난징에 도읍을 정하고 뒤에 베이징으로 옮겼습니다. 정화는 일곱 번 서양으로 원항하여 대함대가 아프리카 동쪽 해안까지 닿았습니다. 콜럼버스보다 거의 한 세기 앞선 일입니다.
명나라는 장성을 고치고 자금성을 세우며 '영락대전'을 편찬했습니다. 우겸은 베이징을 지켰고 척계광은 왜구와 싸웠으며 장거정은 개혁을 밀어붙였습니다. 소설도 크게 일어나 '삼국지연의' '수호전' '서유기'가 모두 명대에 모습을 갖추었습니다.
명 말기에는 당쟁이 격해지고 재난이 잇따랐습니다. 1644년 이자성이 베이징에 들어오고 숭정제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며 명나라는 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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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 전기
AD 1644년 — AD 1839년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는 산해관 안으로 들어온 뒤 강희·옹정·건륭 3대에 영토가 최대에 이르렀습니다. 대만을 거두고 준가르를 평정하며 티베트를 다스려 오늘날 중국 영역의 기초를 놓았습니다.
강희제는 선교사에게 서양 학문을 배웠고 건륭제는 '사고전서' 편찬을 주도했습니다. '홍루몽'이 쓰이고 경극이 싹텄으며 인구는 3억을 넘어 시장 거리는 활기로 넘쳤습니다.
그러나 쇄국은 중국을 점점 세계 뒤로 떨어뜨렸습니다. 1840년 아편전쟁의 포성이 울리자 역사는 무거운 청 말기로 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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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 말기
AD 1840년 — AD 1911년
아편전쟁의 패배는 중국을 '3천 년에 없던 대변국'으로 끌고 들어갔습니다. 열강이 잇달아 몰려들고 불평등 조약이 하나둘 맺어졌으며 원명원의 큰불은 중국을 뼈아프게 태웠습니다.
중국인은 스스로 살 길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임칙서는 세계로 눈을 열었고, 양무운동은 배를 만들고 공장을 세웠으며, 무술변법은 제도 개혁을 시도했고, 쑨원은 동맹회를 조직해 제정 타도를 외쳤습니다.
1911년 우창 봉기의 총성 한 발에 여러 성이 잇달아 호응했습니다. 2천 년 넘게 이어진 제정은 마침내 끝을 맞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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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민국·1949년까지
AD 1912년 — AD 1949년
1912년 중화민국이 수립되고 청나라 황제가 물러나면서 황제의 시대가 끝났습니다. 이후 군벌의 전쟁, 북벌, 항일전쟁, 국공내전이 잇달아 닥쳐와 중국은 파도 같은 격변 속에서 새로운 길을 찾았습니다.
눈을 뜬 시대이기도 했습니다. 신문화운동은 민주주의와 과학을 외쳤고 5·4 운동은 청년들을 깨웠으며 학교와 신문, 공장이 사람들의 삶을 바꾸어 갔습니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며 중화민국의 이야기는 막을 내렸습니다. 오늘에 가장 가까운 이 역사는 교과서와 사진, 그리고 조부모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또렷이 보여 줍니다.
이야기 0개이 시대의 이야기는 아직 준비 중이에요. 다른 왕조도 살펴 보세요.
— 시간의 선은 여기까지. 이야기는 계속돼요 —